물흐르듯이 순리대로
험한돌길 끊어지자 높은난간 나타나니 (2009,11,28-1) 북한산성 산영루 본문
북한산성 계곡을 따라 올라간다,
어느곳이든 계곡에는 토사와 잔돌들은 빗물에 다 씻기여 떠내려가고
그자리에는 큰 바위들만 남아 있는게 큰 물이 흐르는 계곡의 공통점 인것 같다,
여기도 사람의 손으로는 도저히 움직일수 없는 바위들만 계곡바닥에 드러누워 있다,
사람의 눈은 다 같아도 보이는 것은 다를수도 있다,
다시말하면 사람마다 눈에 보이는 사물을 느끼는 감정은 다, 다를수도 있겠다,
내가 보기에는 다 좋아 보여도 다른사람이 보기에는 어디에나 다 있는 흔하디 흔한 그저 그런곳으로
본다면 보는 시각에 따라 개개인 의 만족감이 다 다를수 있겠지만 내가보는 오늘
북한산성 계곡은 어디를 둘러 보아도 다 아름다운 그림같다
울창한 松林 은 아니지만 그런대로 송림의 모습을 갖추고 있는 곳도 지난다,
바위 돌덩이도 보고 소나무 구경도 하면서 쉬엄쉬엄 약 1,7km정도 올라가니
중성문이 나온다, 북한산성에 이렇게 생긴 출입문은 동서남북의 四大門 과 임금님이
다니든 대성문 그리고 이 중성문등, 모두 6개나 있다, 그러면 이 북한산성에는 모두 몇개의 문이 있을까,
산성주능선에 위문(백운암문), 용암문, 보국문에 다가 의상능선에 청수동암문, 부왕동암문, 가사당암문,
원효능선의 시구문, 그리고 여기 중성암문(시구문) 모두 8개의 암문, 이 있다, 물론 대문과 암문은
그 형태도 다르고 그 사용 용도 도 다르지만 모두 산성문으로 친다고 하면
북한산성에서 외부와 연결되든 문은 14개나 된다,
이 중성문은 북한산성축성 1년뒤에 대서문 안쪽에 세운 노적봉과 중봉을 연결하는
이중 방어선의 문인데, 옆에 보이는 깊은곳은 계곡의 물을 막아 두었다가 유사시에 이용하는 수문이 였으나
1915년 8월 대홍수시 떠내려 가고 지금은 그 흔적만 남아있다, 사진에 보이는 구멍은 중성암문(시구문)이다,
성문이 닫혀 있을때 통과하는 문으로 시신을 내 보내는 문이기 때문에 시구문이라 불렀다,
사진에 보이는 오른쪽 깊은곳이 수문터로 앞으로 복원 되여야할 곳이다,
현재까지 북한산성 미복원 문화재로는 노적봉밑 북장대, 상원봉능선 남장대, 홍예만 남아있고 초루를 미복원한 북문,
그리고 행궁, 과 중원사, 수문, 산영루등이 있다, 이 중성문도 1998년 문루와 성벽을 복원 하였다,
그리고 중성문 현판은 신동영 전 고양시장의 글씨이다,
노적사 입구에 있는 청운교가 나온다,
우거진 송림 뒤로는 멀리 노적봉이 보인다, 노적사로 해서 노적봉을 넘는 길은
여러번 소개 한바있어 오늘은 그냥 지나처 올라간다,
북한산 태고사 계곡과 중흥사 계곡이 만나는 지점에 山映樓 (산영루)라는 정자가 있었다,
산길을돌아 도착한 그곳에 날아갈듯 날렵한 느낌의 누정이 서있다, 수많은 조선시인들이 이 정자를 찾았다,
비록 지금은 주춧돌만 남아있지만,
험한 돌길 끊어 지자 높은 난간 나타나니
겨드랑이에 날개 돋혀 날아 갈 것 같구나,
십 여곳 절간 종소리 가을빛 저물어가고
온 산의 누런 잎에 물 소리가 차거워라,
숲 속에 말 매여두고 얘기 꽃을 피우는데
구름속에 만난 스님 예절도 너그럽다,
해 지자 흐릿한 구름 산빛을 가뒀는데
행주에선 술상을 올린다고 알려 오네,
- 다산 정약용 -
다산 정약용과 친구 들이 이곳 누정에 모였다,
해질녁 산사의 종소리와 계곡의 물소리가 들려오지 않았을까,
산영루는 고양시 덕양구 북한동 산 1-1번지 중흥사밑 비석거리앞
절벽위에 세워진 누각으로 1755년 발간된 고양군지등을 통해 알려져 왔으나 그 모습이
확인되지 않았는데 최근 1920년대에 찍은것으로 알려진 신영루 사진이 공개 되면서 그 실제의 모습이
확인 되였다, 경치가 아름다워 조선시대에는 詩會가 자주 열린곳으로 알려진 이 누각은
화재로 소실되여 현재는 주춧돌 13개만 남아 있다,
산영루 옆에는 여러개의 사찰이 붙어 있다, 오늘도 어김없이 스님의 염불소리가 들린다,
오나봐라 오나봐라 안오고 배기나 봐라, 스님의 독경소리에 나그네가 화답한다,
가나봐라 가나봐라 내가 니넘한테 가나봐라, ㅋ
산에 들어서면 좀처름 절집을 비켜가는 일이 별로 없는 사람인데도 오늘은 갈길이 바쁘다,
그래서 휑하니 지나처 산을 오른다
북한산 일출봉 아래 자리한 이곳은 조선 숙종37년(1711년) 북한산성 축성 이후에
건립한 용암사가 있든 절터다, 용암사는 승병을 유치하기 위하여 산성내에 건립한 13개 사찰
가운데 하나로 당초 87칸 규모로 창건된후 용암암문 일대의 산성수비와 승병들의 훈련장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그러나 용암사는 갑오개혁시의 승병강제 해산이후 혼돈기인 19세기 말에 소멸된다, 지금은 북한산성내에서는
유일한 북한산장이 있는곳으로 산성입구에서 여기까지는 약4,4km로 두시간 반 정도 걸린다,
산에 오르면, 푸른 하늘과 찬란한 태양 아래
황홀한 신록과 녹음으로 우거진 산이 속세에 지친 마음을 달래준다.
시원한 한줄기 폭포가 세파에 시달린 귀를 시원히 뚫어 주고, 대자연의 생명을 품은 산의 정기가
온몸에 힘을 불어넣어 줄것이다. 살랑살랑 부는 산들 바람이 사찰 내 風磬(풍경)을 흔들어 내는 소리에
귀 기울여 보라. 청아한 풍경 소리에 가슴이 뻥 뚫리는 듯한 淸凉感(청량감)을 느낄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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