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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흐르듯이 순리대로

광성보, 손돌목 돈대와 광성포대,(2018년 2월 17일) 본문

국내 山行日記/그곳에 가고싶다

광성보, 손돌목 돈대와 광성포대,(2018년 2월 17일)

물흐르듯이순리대로 2018. 2. 20. 12:06



광성보(廣城堡)는, 조선 광해군 10년(1618년)에 고려시대의 외성을 보수해서 설치했다, 

이 보의 돈대는 1679년에 축조된 것이며 오두, 화도, 광성의 돈대와 오두정 포대가 광성보(廣城堡)에 소속되었다.

1745년 완전한 석성으로 개축되어 당시 성문도 설치했다.

광성보는 강화 12진보(鎭堡) 가운데 하나다. 1658년(효종 9)에 강화유수 서원이(徐元履)가 설치했다.

그 뒤 1679년(숙종 5)에 축조된 오두(鰲頭)·화도(花島)·광성 등 돈대(墩臺)와 함께 오두정 포대를 관할했다.

1745년(영조 21)에는 돌로 성벽을 고쳐 쌓으면서 성문을 두어 안해루 ↑ (按海樓)라고 하였다.

1871년(고종 8)의 신미양요 때 이곳에서 가장 치열한 격전이 벌어졌다.

1871년(고종 8) 미국 함대가 통상을 요구하며 강화해협을 거슬러 올라왔는데, 광성·초지(草芝)·덕진(德津)·덕포(德浦) 등

포대에서 일제히 사격하여 물리쳤다. 하지만 4월 23일에 초지진은 미국 해병대 450명의 상륙으로 인해 점령되였고, 이튿날에는 덕진 진이

함락되었으며, 곧 광성보가 공격을 받았다. 당시 광성보를 지키던 중군(中軍) 어재연(魚在淵, 1823∼1871)과 수하 장병은

열세한 무기로 힘껏 싸웠으나 중상을 입어 움직이기 어려운 몇 명을 제외하고는 전원이 순국한다.

이곳 7기의 분묘가 辛未 殉義塚(신미 순의총) 이다,

어재연 어재순 장군은 충북 음성군 성본리에 안장하고 남은 군졸 51인은 신원을 알수 없어 이곳에

합장했다, 조선군은 최후의 한명까지 외세의 침략에 대항하여 나라를 지키려다가 장열히 전사해 이곳에 묻혔다,,

이 무명용사 묘지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진심을 다해 예를 올린다,

 당시 조선군 지휘관 어재연 장군 이하 전 용사가 열세한 무기로 용감하게 싸웠다,

포탄이 떨어지면 칼과 창으로 싸우고 칼과 창이 부러지면 돌과 맨주먹으로 싸워 한 사람도 물러서지 않고 장렬히 순국했다.

이곳은 손돌목 돈대(孫乭項 墩臺)다,

특이한 점은 손돌목(項) 한자는 목 자가 아니라 목덜미 항(項) 자를 썻다,

광성보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한 손돌목 돈대(墩臺)다,

이 돈대는 조선 숙종(1674-1729,재위)때 축조된 돈대 다. 원래 돈대 중앙에 3칸의 무기고가

있었고 포좌 3개처가 있었다. 손돌목돈대는 성곽 길이가 108m이고 고종 8년(1871) 신미양요때 미국 해군과

치열한 백병전이 벌어졌던 역사의 현장이다,

돈대에서 보이는 손돌목(孫乭項) 바다(염하)폭은 좁고 물살은 거칠다,

손돌목 돈대(孫乭項 墩臺) 포구(砲口)

저 작은 구멍으로 포신을 넣어 포를 쏘고 전쟁을 했다,

절대적인 지형의 우세와 불굴의 정신력으로 배를타고 상륙하는 적군에게 높은 곳에서 포를 쏘고

전투를 했어도 참패도 모자라 전군이 전멸해야 했든 이유는 절대적인 무기의 열세였다, 

당시 조선군이 사용했든 포는 포탄이 날아는 가지만 낙하지점에서 터지지 않는 포 였고,

미 해병이 쏘는 포는 탄착점에서 엄청난 폭발력을 가졌다, 개인화기는 물론이고 중화기에서도 이미 전쟁의

승패는 예견되여 있었든 전쟁이였다, 그러나 조선군에게는 적에게는 단 한치의 땅도 내줄수 없다는 불굴의 의지가 있었다,

그러나 전쟁은 화력이 강한 쪽이 이기는게 불변이 아니든가? 나라일을 하는 위정자들이 새겨야 할 대목이다,

손돌목 돈대에서 보이는 부래도

손몯목 돈대(墩臺)를 내려가 용두 돈대(墩臺)로 간다,

이곳은 해안을 따라 강화나들길이 있는 곳이다,

이정표에는 이곳이 강화나들길 2코스라 안내되여 있다,

나들길 이정표를 따라 20m쯤 가면 해안가애 광성포대가 있다,

광성포대는 손돌목 돈대 주변 3곳에 설치되였어며, 각각 9좌, 4좌, 3좌, 포좌를 갖추고 있었든 포대로 

이중에 가장 규모가 큰 중앙포대는 길이 80m 포좌의 크기가 약 6m 정도로 추정 되였고 1875년 운양호 사건을 계기로 외세에

문호를 개방함에 따라 파괴 되였어나 2004년 발굴 조사를 해서 유적이 확인됨에 따라 복원 정비를 했다,

손돌목을 바라보고 있는 이곳이 광성 포대가 있는 곳이다,

해안을 따라 길게 이어져 있는 광성포대,

멀리 까지는 갈 시간이 안되여 잠시 돌아보고 용두돈대 로 올라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