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흐르듯이 순리대로
광성보 용두돈대와 손돌목 (2018년 2월 17일) 본문
광성포대를 나와서 용두돈대로 가는 길에는 이 물길에서 손돌의 목을 벤 곳이라서
손돌목의 이름이 된 손돌이라는 뱃사공에 얽힌 이야기가 안내되여 있다, 이 이야기는 이렇게 문서와
사람들의 구전으로 전설처름 대대로 전해져 갈 것이다, 이 이야기중 특이한 것은 지금도 손돌이 죽은 음력 10월 20일에는
큰 바람이 분다고 한다, 이를 손돌의 한숨, 손돌바람, 손돌추위라 한다,
1871년 4월 24일 미국의 로저스가 통상을 요구하면서 함대를 이끌고 1,230명의 병력으로 침공한
신미양요 당시 가장 격렬했던 격전지인 광성보는, 이 전투후 성책과 문루가 파괴되어 폐허가 되었던 것을 1977년 안해루,
광성돈, 손돌목돈, 용두돈과 전사한 무명용사들의 묘, 어재연 장군의 쌍충비각 등이 모두 보수 정화되었으며, 이 때
세운 강화 전적지 정화기념비 가 용두돈대 위에 서 있다. 끝에 보이는 비가 강화 전적지 정화기념비다,
용두돈대 안내 다
안내에 따르면
이곳 용두돈대는 광성보 제일 높은 곳에 있는 손돌목 돈대의 외곽초소 겸 돈대라 되여 있다,
강화 전적지 정화기념비가 가운데 있고
삥둘러서 성곽이 있는 방어시설로는 천혜적 여건을 갖춘 곳, 여기가 용두돈대다,
전적지 정화비 양 쪽에는 그 시절에 사용했든 대포가 전시되여 있다,
이곳으로 들어 오기전에 둘러본 광성포대, 도 보인다,
이 물길이 손돌목 이다,
건너편에 보이는 곳은 손돌묘가 있는 덕진진 파수청 옆 언덕이다,
손돌목의 물살, 사람들은 이곳 손돌목 물살은
이순신 장군이 왜군과 전투를 벌였든 울돌목과 비교할 만큼 물살이 거센 곳 이라한다,
용두돈대는 손돌목 돈대에서 이렇게 길게 해안가로 튀여나와 자리하는 요새다,
손돌목물길을 배경으로 건너편 부래도가 보이는 지점애서 인증샷도 하고
令 깃발이 바람에 펄럭이는 돈대 성길을 따라 손돌목 돈대 방향으로 나간다,
높은 억덕에 있는 손돌목 돈대,
신미양요 기간동안 조선군과 미군이 가장 치열한 전투를 벌였든 곳이 광성보였다,
그중에서도 손돌목돈대는 조선군 사령관인 중군 어재연 장군이 직접지휘하여 격렬하게 반격을 가하든 요새로
미군측에서는 맥키 해군중위와 두 명의 수병이 전사하고 조선측에서는 어재연 장군을 비롯한 대부분의 조선군이 장열히 전사했다,
흰옷차림의 조선군 전사자 시체들이 블비하게 널려있는 모습의 처참하기 그지없는 사진이 남아있다,
쌍충비각이다, 이 비각은 어재연장군과 그의 동생인 어재순 및 여타 장군들을 기린 비다,
심미양요때 미군측 기록에 의하면 조선군들은 결사적으로 용감하게 싸우면서 아무런 두려움이 없었다,
그들은 항복같은걸 아예몰랐다, 무기를 잃은 자들은 돌과 흙을 집어던졋다, 전세가 불리해지자 살아남은 조선군 100여명은
강물에 투신 자살했고 일부는 스스로 목을 찔러 자결했다,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이보다 더 장열하게 싸운 국민은
다시 찾아볼수 없을 것이다, 이날 2시간 45분의 전투에서 조선군 243명이 전사했고 자결 순절한 병사까지
합치면 350명이 죽었다, 라고 기록했다,
신미양요의 숭고한 호국영령들을 영원히 기리고저 이곳에 쌍충비각과
신미양요무명용사비(辛未洋擾殉國無名勇士碑) 를 세웠다, 비각이 있고 비석이 있나 보다 라고
무심히 지나처가면 모르겠지만 이 비각과 비탑에 얽힌 역사를 알게되면
절로 고개가 숙여지고 가슴이 아려올것이다,
이렇게 나라를위해 목숨을 바친 선조들이 있었기에 오늘의 우리가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잠시 님들을 향해 묵념을 올린후 광성보 해안가로 내려간다,
지금은 해안가를 말끔히 단장해서 공원으로 조성했지만
이곳 모두가 우리선조들이 흘린 피로 물들었든 땅이니 숙연한 마음이 든다,
해안가는 광성보 안해루가 있는 바같이다,
1998년에 광성보 안해루 해변쪽으로 넓은 휴식공간을 조성했다.
광성보는 현재 사적 제 227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매년 음력 4월 24일에는 어재연 장군을 비롯하여 장렬하게
전사한 무명용사들에 대한 광성제가 11:00부터 봉행된다. 이 광성보는 당시에 사용한 대포와 포대, 성이 잘 남아 있고
바다를 내려다보는 전망과 돈대의 곡선 모양이 인상적이다.
광성보 안해루 옆에는 광성돈대가 있다,,
광성포대에는 3개의 포가 있는데 우측 제일 큰 포는 포구장전식 화포로서 사정거리 700m이며
조선 영조때 부터 주조하여 사용하였다. 폭발하는 힘으로 포탄은 날아가나 자체는 폭발하지 않아 위력이 약하다.
가운데 있는 포는 중간 소포로 장전후 뒤쪽 구멍에 점화하여 사격하는 포구장전식화포로
사정거리 300m 로 우리나라 재래식 화포중 가장 발달된 형태를 갖추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주 작은
포가 불랑기다, 불랑기는 프랑스군이 사용하던 것으로 임진왜란을 계기로 널리 사용된 화승포로서 포 1문에 다섯개에서
아홉개의 자포를 결합하여 연속 사격 할 수 있는 발달된 화기다.
광성 돈대는 광성보에 소속된 3개 돈대중 하나로서 숙종5년인 1679년
함경도, 황해도, 강원도의 승군 8,000명과 어영군 4,300명이 40일만에 완공하였다 한다.
1977년에는 포좌 4개소와 포 3문이 복원 설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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