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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흐르듯이 순리대로

이름만으로도 아름다운 연주대 관악의 품,(2009년 3월 7일) 본문

국내 山行日記/서울·북한·도봉

이름만으로도 아름다운 연주대 관악의 품,(2009년 3월 7일)

물흐르듯이순리대로 2009. 3. 7. 16:27

2009, 3, 7, 토요일 아침 서둘러서 나섰는데도 지하철 4호선 과천역에 내려

과천향교 앞에 들어서니 벌서 9시30분이다, 계곡등산로를 따라 약 30여분 올라가니

제일 먼저 아직 쌀쌀한 날씨에도 벌서 싹을티운 버들강아지가 반겨 주는데 계곡을 따라 

시원스럽게 흐르는 물은  아주 깊은 산중에서 흐르는것 처름  소리내여 흐르는게

봄이 성큼 다가 온듯한 느낌이다,

잠시 커피한잔 타서 마시며 주변을 둘러보니

아직도 음지 바위틈에는 고드름이 주렁주렁 달려있다,

오 유월에 강아지 할딱대듯 약 2시간 가량 오르니 정상 코밑에 있는 연주암이 나온다, 

    잠시 짐을 내려놓고 한숨을 돌리며 올라온길을 내려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부지런히 올라오고 있다,

    연주암 바로 위쪽 산 위 정상에는 둥근형태의 관악산 기상관측소 와 관악산 방송전파 송신탑이

지근거리에 보이는데 빤히 보이는 저기까지 가자면 아직도 한참을 더 걸어야 할것같다

연주암 대웅전 앞 마당에 있는 이탑은 높이 3,6m로 1장의 판석으로 구성된 지대석

위에 기단은 4장의 판석을 엇물려서 조성했는데 각 면에는 모서리 기둥(우주)이 새겨져있다,

탑신과 지붕들은 각각 하나의 돌로 만들어져 있다, 지붕틀 받침은 1층은 4단이지만

2층과 3층은 3단으로 만들어져 있다,

이 탑은 낙수면의 길이가 짧고 전각의 반전이 둔중하여

고려시대 석탑의 특성을 보여 주며 지붕돌 위에는 노반석과 양화보주가 놓여 있다고

안내되여 있는데 무지한 사람의 눈에는 무었이 양화보주인지 알수가 없다,

관악산의 기암 절벽위에 석축을 쌓아 터를 만들고 지은 이 암자가 유명한 관악산 연주대 이다

   지금으로 부터 1,330년이나 흐른 그 먼 옜날에 저 천길 벼랑끝 낭떨어지에 어떻게 석축을쌓고 암자를 지었을까?,

 천년전 옜날 시절에 무슨 도구로 돌과 흙을퍼다가 길도없는 저 벼랑끝에서 토목공사를 했는지 알길이 없다,

그래도 천년의 세월을 훌쩍넘긴 오늘까지 오랜 세월의 풍파를 견디여내고 있는 저 연주대를 보면 

그때의 토목기술이 현재의 눈으로는 상상이 되지 않을 정도로 선조들의 쏨씨가 경이롭다,

연주대는 신라의 승려 의상대사가 신라 문무왕 17년(677년) 이곳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관악사를 건립할때 함께 건립한 것으로 당시에는 의상대 로 불렀다고 한다,  나중에 관악사와

의상대는 연주암과 연주대로 이름이 바뀌었는데 그내력에 대해서는 두가지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고 한다,

 한가지는 조선개국 후 고려에 대한 연민을 간직한 사람들이 이곳에 들려 개성을 바라보며 고려의

충신열사와 망해버린 왕조를 연모했다고 하여 연주대라 불렀다는 이야기고,


또 하나는 조선태종의 첫번째 왕자인 양녕대군과 두번째 왕자인 효령대군이 왕위계성에서

멀어진 뒤 방랑 하다가 이곳에 올라 왕위에 대한 미련과 동경의 심정을 담아 왕궁을 바라보았다 하여

 연주대라 이름지었다는 이야기다,  두 이야기 모두 연민을 불러 일어키는 내용인데 이것은 연주대의 주변

경관이 워낙 뛰여난 절경인데다 한눈에 멀리까지 내려다 볼수 있는 위치여서 붙혀진 전설로 생각된다,

현건물은 세평남짓한 맞배지붕으로 조선후기에 지어진 것을 최근에 해체 복원한 것이라고 한다,  

연주대 가기 직전에 있는 관악산 주봉인

이곳은 오늘 따라 봄을 마중나온 사람들로 넘쳐난다,

관악산 주봉 벼랑끝에 자리한 연주대로 들어가는길, 한사람이 지나가면 기다렸다가

가야하는 좁은길로 연주대로 들어선다, 이왕지사 오늘은 부처님터에 들었으니 어찌 그냥 갈수가

있겠는가,  천년의 세월을 묵묵히 견디여낸 연주대에서 108배 3000배는 못하드라도 정성을 다해 

합장하고 기도를 드린다, 이세상 우리 모두의 평안을 기원하며...

연주대에서 나오면서 건너다 보니 여러개의 송신탑들이 보이고

음지에는 아직도 눈이 녹지않아 잔설이 남아 있는게 보인다,

계속해서 연주대로 올라오고 있는 많은 사람들 그림으로 보이는것은

    자연경관과 더불어 아름답게 보이지만 저기 벼랑길을 지금 오르고 있는 사람들은 무척이나 힘겨울것 같다,

내려가는 초입은 이렇게 잘정비된 등산로다, 이 계단을 내려가면 의상대사가

창건했다는 관악사지와 법당터가 나오는데 지금은 주춧돌과 터만 보일뿐 사찰 건물은

모두 소실되고, 1300년이 넘는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역사의

현장은 등산객들의 쉼터로 사용되고 있다,

내려 가는 초입은 이렇게 잘정비된 등산로 였었는데 계단을 다 내려가니

바로 의상대사가 창건했다는 관악사지 와 법당터가 나오는데 지금은 주춧돌과 터만 보일뿐

사찰 건물은 모두 소실되고 없다, 1300년의 세월의 흔적을 간직한 역사의 현장이지만 

지금은 등산객들의 쉼터로 사용되고 있다,

장장 오늘 6시간의 산행중(쉬엄 쉬엄 거북이 걸음으로) 5시간정도 되는지점 하산길

헬기장에 내려서니 오늘 내가 하산한 코스로 멀리 기상관측대와 송신탑이 조그만하게 보인다, 

 발아래 서울대 캠퍼스가 보이고 서울 서부지역 일대와 여의도 6,3,빌딩,

국회의사당, 그리고 목동 하이페리온 건물도 눈에 들어온다 저 멀리 일산은 물론 서해바다까지 

보이는것 같지만 내눈이 천리안이 아니라서 그냥 그럴거라고 넘어간다,

그 높디 높은 남산이 왜 저리도 쪼그만하게 보일까,

한강을 따라 한강철교, 한강대교, 한남대교,는 물론 천호대교,까지 육안으로 다 보인다,

부티나는 강남의 빌딩들이 바로 아래 봉천, 사당지역 건물들과 비교가 되기는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