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흐르듯이 순리대로
국립극장~장충단~보신각까지(2022년 3월 13일) 본문
국립극장에서 장충단공원으로 내려간다,
장충단공원으로 가는길 건너편에 한국자유총연맹이 있다
1956년 5월에 설립된 자유연맹은 자유민주주의를 옹호, 발전시키고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통일을 추구하는 단체다,
1964년 1월 한국반공연맹, 1989년 4월 한국자유총연맹으로
이름이 바뀌였어나 하는 일은 통일준비 민주시민교육, 홍보, 출판사업,
기념관 운영, 범국민운동, 국민통합 및 자원봉사 활동이다,
한국자유총연맹은 지금 트럭터미널로 사용중이다,
건축가 김수근의 작품으로 건축할 정도로 막강한 힘이 있든 단체였어며
해외 출국시 반공 교육을 받아야 했든 곳이기도 하다,
국립극장 경계에
3,1독립운동 기념탑이 있다,
장충단 3,1 독립운동 기념탑은 높이가 19m 19cm인데
이는 3.1운동이 일어난 1919년을 의미한다
吾等(오등)은 (자)에 我(아) 朝鮮(조선)의 獨立國(독립국)임과
朝鮮人(조선인)의 自主民(자주민)임을 宣言(선언)하노라. 此(차)로써
世界萬邦(세계 만방)에 告(고)하야 人類平等(인류 평등)의 大義(대의)를 克明(극명)하며,
차(此)로써 子孫萬代(자손 만대)에 誥(고)하야 民族自存(민족 자존)의 正權(정권)을
永有(영유)케 하노라, 로 시작하는 독립선언서가 새겨저 있다,
이어서 옛 장충단의 제사를 올리는 사당이 있던 자리다,
을미사변 때 숨진 궁내부 대신 이경직, 시위대장 홍계훈을 비롯하여 임오군란과
갑신정변 때 숨진 신하와 군인들의 제사를 모시던 사당이 있었다.
오른쪽 끝에는 호텔신라가 보인다,
이어서 유관순열사 동상도 있다,
유관순열사 동상은 숭례문 앞에 있었어나 1971년 현재 위치로 이전했다
유관순열사 동상 앞은 남산2호터널 입구다,
장충리틀야구장이 지금도 있다,
리틀야구장은 동국대학교 입구에 있다,
동국대학교 방향으로 가다가
한옥이 보이는
곳에서 장충단공원으로 들어간다,
한옥옆 동국대쪽에 일성 이준열사 동상이 있다,
1907년 만국평화회의에 고종 특사로 파견됐다가 순국한 이준열사 동상이다.
이준열사 동상 맞은편에 있는 한옥,
이 한옥은 어떤 역사가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지만 한때는
장충공원내 식당이였다, 지금은 아니지만
한국유림 독립운동 파리장서비도 있다,
3,1운동후 유교계 대표 137명이 2674자에 달하는 장문의 독립청원서를
파리강화회의에 보낸 일을 기념하기 위해 건립한 비다.
장충단공원 초입에 있는 서울시 유형문화재 18호인 수표교.
세종대왕 때 만들어저 청계천의 수위를 측정하던 수표교는 원래 청계 2가에
있었으나 1958년 청계천 복개공사 때 철거되어 홍제동으로 잠시 이전
했다가 1965년 이곳 장충단공원으로 옮겨졌다.
1900년 고종은 갑신정변과 을미사변 등으로 희생된 군인들을
추모하기 위해 장충단을 건립했다. 장충(奬忠)이란 "충"을 장려한다는 단 의 의미다.
현재 장충단공원은 원래 장충단 영역의 일부일 뿐, 처음에는 지금의
신라호텔 일대 전체가 장충단 이 였다.
장충단공원 박물관에 있는 일제가 당시에 제작한 장충단공원 지도 다,
지도상에 보이는 A지점은 이토 히로부미를 추모하기 위해 만들어진 사찰인 박문사가 있던
자리로. 일제는 박문사가 있는 언덕을 춘무산(春畝山)이라고 명명했는데, 춘무는
이토의 호다. 현재는 신라호텔 영빈관이 있는 자리다.
군인들을 기리기 위한 곳으로 지어졌지만 일제에 의해 능욕을 겪은 공간이기도 하다.
1909년 이토 히로부미가 죽었을 때 그를 추모하는 행사가 장충단에서 열렸다. 일제는 주권박탈 후
조선에서 지내는 자국민을 위해 1919년 장충단을 공원화하여 각종 문화행사를 했다.
게다가 일본은 장충단공원에 상하이 사변때 사망한
일본군 육탄3용사 동상을 세우기도 했어며 1932년에는 현재의
신라호텔 자리에 이토 히로부미를 추모하는 사찰인 박문사를 만들면서,
경희궁 정문을 뽑아다가 출입문을 만들기도 했다,
해방 후 박문사는 철거된다. 대한민국 정부는 1967년 박문사 자리에
국가 내외빈을 모시는 영빈관을 지었는데. 뒤에 이 영빈관 일대는 모두 신라호텔이
되였어며 국가 귀빈을 모시던 영빈관은 신라호텔의 부속건물인 신라호텔
영빈관으로 바뀌여 오늘에 이른다,
장충단은 195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는 정치 유세 현장으로도
유명한데 1971년 대한민국 제7대 대통령 선거에서 약 100만명의 시민이 모인 가운데
당시 김대중후보와 박정희후보가 벌였던 유세대결은 지금도 전설처름 남아있다,
장춘단비가 있는 공원을 나와서 동국대방향
장충파출소 뒤에 동대방향으로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가 있다,
가는길이니 이걸 타고 올라간다,
에스컬레이트가 도착하는 지점에 스님 동상이 있다,
동상이 있는거야 자연스럽겠지만 여기는 동국대학교 교내가 아니고
장충단공원이니 무슨뜻으로 스님 동상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동국대학교로 가는 장충단공원길을 지나서
동국대학교 후문으로 왔다,
계속이어지는 길은 앰베서드호텔 방향이다,
앰배서드 호텔과 호텔주차장 사이길로
계속해서 따라가면
서울충무초등학교로 이어진다,
서울충무초등학교 정문에는
책임을 다하는 리틀충무공이 되겠다는 다짐의 내용도 붙어있다,
이어서 퇴계로다,
퇴계로5가 교차로와 퇴계로 4가교차로 중간 정도?
퇴계로4가 교차로에서 중구청 방향으로 간다,
지금 가려고 하는 곳은 종로 보신각인데 어디로 가도 되겠지만
지름길로 가다보니 골목으로 가게 된다,
중구청뒤 좁은 골목을 지나가면 퇴계로 진양상가에서
종로세운상가까지 연결된 서울도심의 중심축이였든 상가건물과 만나게 되는데
여기는 덕수초등학교 근처 PJ호텔이 있는 상가다,
을지로에서 청계천까지 이어지는
대림상가로 왔다,
그리고 대림상가가 끝나면
세운상가다,
세운상가는 청계천에서 종로3가와 4가 사이에 있는 상가다,
대림상가와 세원상가를 이어주는 마당같은 다리는
청계천이라서 세운교라 명명한 곳이다,
세운교에서 청계천으로 내려 간다,
가는길은 세운교에서 관수교 방향이다,
여기서는 청계천물길 상류로 올라가는 길로 이길끝은 청계천 시작 지점이다,
관수교로 올라간다,
세운교 다음 관수교를 지나서
다음 상류로
보이는 저 다리는 수표교다,
장충단에서 보고 왔든 수표교는 돌다리 였어나
총계천 수표교는 나무 다리다, 물론 철재로 기틀을 잡고 나무로 감싼 다리지만
수표교 다음다리는 삼일교다,
오늘은 청계천 물길따라 삼일교 까지만 가면 된다,
수표교에서 삼일교로 가는길 청계천 담벽에는
물길따라 걷다보면 어느새 맑아진다, 오늘 우리걷자 이길따라
라는 글자가 쓰여 있고 그 위로는
파고다빌딩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서 있다,
아어서 삼일교다,
삼일교 아래 코스모스와
해바라기 꽃이 그려진 벽화를 보면서 다리 끝으로 가면
청계천에서 위로 올라가는 전용 엘리베이터가 있다,
엘리베이터 앞에는 계단도 있지만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간다,
이어서 보신각 방향으로 올라가는길
청계천 건너편에 있는 서울 고용노동청사
물론 다른 입주회사들도 있겠지만 건물의 규모가 실로 대단하다,
삼일교 다음에 있는 장통교까지 올라왔다,
장통교에서 만난 2022년 봄
남대문에서 남산을 지나 장충단공원 그리고 청계천을 따라 오면서도
보이지 않았는데 처음으로 꽃이 피여나는 산수유를 보았다,
장통교앞에서
종로로 이어지는 젊음의 거리로 들어간다,
젊음의 거리에 있는 종로 교촌치킨 본점
사거리에서
골목길 끝 건물 뒤가 보신각이다,
사실 여기까지 온 것은 목표가 보신각이 아니라
코로나 시국이라서 식당 보다는
사무실에서 짧은 걸음 긴 뒷풀이를 하기 위해서다,
남대문에서 남산과 장충단을 거처서 보신각까지
8,32km에 4시간이 걸렸다, 트랭글앱이 업데이트 되더니
화면도 바뀌여서 낮설지만 차츰 익혀가야 겠다,
앱에서는 중요지점을 뱃지로 올려주는데
뱃지로 보니 서울은 가는곳 모두 역사의 장소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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