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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흐르듯이 순리대로

천년고찰 신륵사(神勒寺) 본문

국내 山行日記/인천·경기·강원

천년고찰 신륵사(神勒寺)

물흐르듯이순리대로 2026. 5. 18. 06:16

신륵사관광지 문이다, 신륵사는 신라 진평왕 때(7세기경) 창건된 고찰이지만, 여주시가 1990년대 후반 ~ 2000년대 초 관광지 조성 사업을 추진하면서 건립한 관광지입구에 현대식 일주문을 세워 관광객 편의를 위한 시설로 조성한 것으로 네 개의 붉은 기둥과 화려한 단청(단청은 전통 채색 문양)상단에 ‘신륵사관광지 라는 금색 글씨 현판 좌우에 석사자상과 석거북상이 배치되어 상징적 수호 의미를 지닌 문이다,

봉미산(鳳尾山)신륵사 일주문으로 들어간다, 일주문은 불교 사찰의 상징적 시작점으로 하나의 기둥 이라는 이름처름 일심(一心) 즉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 수행의 출발을 의미한다, 일주문은 단순한입구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속세와 성역을 나누는 상징적 문을통해, 자연스럽게 마음을 가라앉히고 고즈넉한 사찰 분위기에 젖게되는 문이다,

 

신륵사 일주문 기둥에는 (三日修心天載寶 - 삼일 수심 천재가)사흘 닦은 마음은 천년의 보배요, (百年貪物一朝塵 - 백년 탐물 일조진)백 년 탐한 재물은 하루 아침의 티끌이다.라는 뜻의 주련(柱聯)이 붙어 있다,

신륵사 일주문을 들어가면 바로 왼쪽에 비석군(碑石群)이 있다, 신륵사 중창과 역사적 사건을 기념하는 비석들이 모여 있는 공간으로, 신륵사의 역사와 불교 문화재의 흐름을 보여주는 중요한 장소다

짓푸른 5월의 짓푸름이 우거진 길을 따라 신륵사로 들어가면 

왼쪽으로 보이는 여러채의 부속 당우가 보이는데 스님들의 요사채인듯? 하고

오른쪽에는 편의 시설인 차 방도 있다, 재미있는 것은 절에서는 일반적으로 전통차를 파는데 여기는 아이스 커피까지 파는 카페다,

불이문 앞 뜰에는 여러 사람들이 앉을 수 있는 원형 의자로 꾸며진 나무도 있다,

不二門 으로 들어간다, 마음은 평안으로 세상은 화합 으로 라고 쓰여진 문이다, 신륵사의 불이문(不二門)은 대웅전으로 들어가는 마지막 관문으로, ‘진리는 둘이 아님’을 상징하는 문이다. 이 문으로 들어가면 불국토로 들어가는 것으로 여겨져 ‘해탈문(解脫門)’이라고도 불린다.

인간은 "늘 옳다, 그르다, 나와 너, 삶과 죽음" 같은 이분법적 사고에 갇혀 있다. 불이문은 이런 분별을 넘어선 자리, 즉 모든 것이 본래 하나임을 깨닫는 문을 의미한다. 불교에서는 언어와 개념이 진리를 온전히 담을 수 없다고 본다. 불이문은 언어를 넘어선 깨달음의 세계로 들어가는 관문으로 모든 존재가 서로 의존하고 연결되어 있다는 인드라망 의 사상과 맞닿아 있다. 결국 나 와 타자 가 둘이 아니라는 깨달음이 불이문이다

불이문 안 한강변으로 오래된 듯한 정자도 있다, 신륵사 불이문 앞의 정자는 참 멋진 장소다. 남한강을 내려다보며 불이의 가르침을 음미할 수 있는 공간이다, 불이문은 "둘이 아님"을 상징하는 깨달음의 관문이고, 그 앞 정자는 단순한 휴식처가 아니라 사유와 성찰의 자리로 볼 수 있다. 

강물은 끊임없이 흐르지만, 그 흐름 속에서 모든 것이 하나로 이어져 있음을 보여준다. 정자에 앉아 있으면, 나와 자연, 시간과 공간이 분리되지 않고 하나로 어우러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불이문의 사상과 정자의 풍경이 맞물려, 분별을 내려놓고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마음 을 체험할 수 있다. 정자에 앉아 강바람을 맞으며, 나와 세계가 둘이 아님 을 몸으로 느끼는 순간이 바로 불이문의 의미와 이어지는 것이다,

신륵사 한강변은 사찰내로 들어오는 도로가 있다, 사찰전용 도로다, 그리고 보면 먼길 걸어 이동하는 고행도 수련이라던데 요즘 스님들은 자가용이 필 수 인 모양이다,

정자에서 잠시 한강을 둘러보고 안쪽으로 더 들어가면

고즈녁한 분위기의 당우들이

이어 지는데

이제 부터는 본격적으로 신륵사를 돌아 볼 시간이다, 서울에서 그리 먼거리는 아니지만 신륵사를 언제적에 와 보았는지? 기도 가물거리는 세월이 지난듯 해서 새롭기만 하다,

범종각루가 보인다, 신륵사 범종각은 남한강 변에 울려 퍼지는 종소리로 유명한 ‘여주 8경’ 중 하나로 꼽히는 종각이라고 한다,

범종각 앞에는 신륵사 위치 안내 이정표도 있다, 

현재 신륵사 범종각에는 범종, 법고, 목어, 운판이 함께 걸려 있어 불교의 네 가지 법구를 모두 갖춘 전각이다,

범종각 옆 극락보전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구룡루 가 있는데 여주 신륵사 구룡루(九龍樓)는 극락보전 맞은편에 위치한 2층 누각으로, 남한강 절벽 위에서 뛰어난 풍광을 감상할 수 있는 명소다. ‘아홉 마리 용의 누각 이라는 이름처럼 창건 설화와 불교적 상징이 깃든 건물로, 조선 철종 9년(1858)에 중창되었다,

 

전설은 아홉 마리 용의 누각으로  옛날 이 자리에 큰 연못이 있었는데, 나옹선사가 아홉 마리 용을 제도하기 위해 누각을 세웠다는 전설과, 연못을 메우려던 주지스님 꿈에 아홉 노인이 나타나고 며칠 뒤 아홉 마리 용이 승천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불교적 상징으로는 석가모니 탄생 시 아홉 용이 물을 뿌려 목욕시켰다는 경전과도 연결이 된다, 

九龍樓(구룡루)는 신륵사의 역사, 전설, 불교적 상징을 담은 누각이자 남한강 절경을 감상할 수 있는 최고의 전망대다, 직접 올라서 바라보면 설화 속 아홉 용의 기운과 천년고찰의 숨결을 함께 느낄 수 있다고 한다,

구룡루 뒤 極樂寶殿(극락보전)으로 들어 간다, 사찰의 중심법당은 대웅전과 극락보전으로 나누어지는데 대웅전은 석가모니불을 모시는 사찰의 중심 법당이고, 극락보전은 아미타불을 모셔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전각이다. 즉, 대웅전은 불교 교리와 수행의 중심지며, 극락보전은 신도들이 서방정토로 가기를 발원하는 공간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여주 신륵사 극락보전(極樂寶殿)은 신륵사의 중심 법당으로 아미타불을 모신 전각이다, 

신륵사 극락보전 앞마당, 석탑은 고려 석탑 양식의 아름다움과 왕실 원찰의 위상을 함께 보여주는 대표적 문화재 다. 극락보전과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은 신륵사의 상징적 풍경으로, 직접 보면 고즈넉한 불교미 와 역사적 깊이를 느낄 수 있다.

극락보전은 현재 경기도 유형문화유산 제128호로 지정된 조선 후기 건축물로.1678년에 건립되고 1800년에 중창된 팔작지붕 다포계 건물이며, 왕실 원찰의 격식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불전 이다.

신흥사 극락보전 일대 전각 배치는 마당을 중심으로 극락보전과 구룡루가 마주보고, 좌우에 운하당과 적묵당이 자리하는 사동중정형(四棟中庭形)구조로 왼쪽에 위치하는 운하당은 승려들의 생활 및 수행공간이고 오른쪽 적묵당은 선승들의 정진과 휴식 공간이다,

극락보전 앞 구룡루는 鳳尾山 神勒寺(봉미산 신륵사)라는 편액도 함께 걸려 있어 사찰의 정체성을 드러낸다.

적멸보궁 앞 향나무는 사찰의 고즈넉한 분위기를 더해주는 상징적인 나무로 적멸보궁 앞마당에 자리해, 참배객들이 극락세계를 상징하는 법당을 향해 갈때 가장 먼저 마주하게 되는 나무로 향나무는 불교에서 장수와 청정함을 의미하며, 부처님 앞에 향을 피우는 행위와 연결되어 신성한 기운을 더 하며 고려말 나옹화상과 조선왕실의 원찰로 오랜 역사를 지녔는데, 이 향나무 역시 오랜 세월동안 사찰과 함께 살아온 자연 유산으로 전해지는 나무다,

구룡루 주변에 자리한 은행나무다, 사찰 경내에서 가장 눈에 띄는 나무 중 하나로, 오랜 세월 동안 신륵사의 역사와 함께해온 자연 유산이다. 단순한 경관 요소를 넘어, 신륵사의 고즈넉한 분위기와 불교적 상징성을 함께 담아내는 자연문화재적 의미를 지니는 나무다,

구룡루옆 은행나무는 660여년전 고려말 공민왕사 나옹스님이 심은 것으로 전해지고 불, 법, 승, 삼보를 상징하듯이 세줄기의 가지로서 모습을 갖추었으며

세줄기 가운데는 관세음보살이 나투신 듯한 희유한 모습으로 자라 났으며 또한 관세음보살님이 대자대비로서 모든 중생들의 괴로움을 구원하고자 하는 발원으로 신륵사 은행나무에 나투신 것처름 보인다,


여주 신륵사 다층전탑(驪州 神勒寺 多層塼塔)이다, 고려시대에 벽돌로 쌓아 올린 유일한 전탑으로, 현재 보물 제226호 이고 높이는 약 9.4m이다,

현존 유일 고려시대 벽돌탑으로는 유일하게 남아 있는 사례로 남한강 절벽 위에 세워져 강과 평야를 내려다보는 위치 선정이 특징이고 불교적 의미는아미타 신앙과 나옹선사의 사리 봉안과 연결되어 신륵사 중심 상징물 중 하나다, 보물 제226호(1963년 1월 21일)로 지정된 문화재다,

 대장각기비(大藏閣記碑)다, 고려 우왕 9년(1383)에 세워진 비석으로, 신륵사 극락보전 서쪽 언덕에 있던 대장각(불경을 제작, 보관하던 건물)의 조성 과정을 기록한 기념비다. 현재 보물 제230호로 지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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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륵사 삼층석탑(三層石塔)은 화강암을 깍아만든 고려시대에 조성된 석탑으로, 신륵사 경내의 대표적인 불교 유적 중 하나로. 불탑은 부처님의 사리를 봉안하거나 법신을 상징하는 구조물로  극락세계와 중생 교화를 의미하고 삼층석탑은 고려 석탑의 단아한 아름다움과 불교적 상징성을 간직한 문화재다,

 

삼층탑은 다층전탑 근처 강변의 암반에 세워져 있다, 불교에서 탑은 부처님의 사리를 모신 무덤양식에서 기원한 것이다, 삼층석탑(三層石塔)은 탑을 지탱하고 있는 기단부는 넓직한 한 장의 돌로 만들어져 있고 그 위에는 사각형의 상대중석과 감석을 올려 놓았다, 상대중석의 각 면에는  기둥 모양의 우주와 탱주를 새겻고 그 위를 덮고 있는 갑석에는 연꽃 무늬가 아래로 향하게 새겨져 있다,

신륵사 한강변 정자 江月軒(강월헌)이다. 고려 말 고승 나옹화상(혜근)이 1376년에 신륵사에서 입적한 뒤, 제자들이 그의 다비 장소에 세운 정자로 알려져 있다. 현재 건물은 1974년에 복원된 형태로 남한강 절벽 위에 세워져, 사찰의 고즈넉한 분위기와 강변 풍광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명소다 신륵사 경내에서 남한강을 내려다보는 절벽 위에 자리해, 물길과 여주 들판을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는 장소다,

목조 누각 형식의 개방된 구조로, 만들어진 정자는 강바람과 자연을 그대로 느낄 수 있게 설계되였다, 정자에 오르면 황포돛배가 오가는 남한강 물길과 여주 도심 풍경이 어우러져, 신륵사의 대표적인 풍류 공간으로 꼽힌다. 불교적 의미는 단순한 휴식 공간을 넘어, 자연 속에서 수행과 사색을 이어가는 장소다.

江月軒 정자를 나가 구룡루 앞으로 해서 불이문 방향으로 나간다, 오늘 2026년 5월 17일 여주 신륵사 여행은 여기서 끝이다, 언제 다시 찾아 올려는지는 모르겠지만 수십년만에 다시 찾아온 신륵사에서 새로 만들어진 남한강 출렁다리 까지 돌아 보았어니 먼 후일 다시 오게 되면 또 어떤 모습으로 변해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