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경기옛길(조선시대 7大路) (137)
물흐르듯이 순리대로
설봉산 정상으로 들어온 길로 100m를 돌아가 설봉산성으로 가야 하지만설봉산 정상에서 바로 설봉공원으로 내려간다, 길은 꽤나 먼거리에 데크계단을 만들어 놓았다,데크계단을 모두 내려가첫번째 보이는 이정표에서 봉화길 시그널은 300m거리인 영월암으로 가라고 알려준다, 내려가는 길은 가파른 길이다, 잠시 내려가다보니 정상에서 보던 것보다 더 좋은 조망이 있는곳이 있다,설봉호수도 보이고 이천 신개발지 아파트공사 현장도 내려다 보인다, 우리가 가는길은 설봉호수 둘레로 아파트공사장 옆으로 이어진다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군과 일전을 벌이기 위해 복하천(福河川)을 건넛다는 복하천도 내려다 보인다,이렇게 조망이 좋은 곳이니 길게 땀을 식히면서 간식도 하고 나서 내려간다,설봉산 정상에서 440m지점, 영월암 100m, 설..
삼국시대 격전장의 역사를 담은 남천주길은 " 이섭대천(利涉大川)" 이천의 유래를 찾는 여정으로 신둔도예촌역에서 부발역까지 16km 약 5시간 정도가 걸리는 길이다, 2024년 6월 23일 08시 30분경 이천신둔도예촌역으로 왔다,신둔도예촌역 1번출구로 나가면 항아리와 항아리를 만드는 도공의 손을 형상화해 놓은 조형물이 있다,외진 곳에 있는 역이라 그런지? 역 간판크기는 족히 10여m는 되는 것 같다,1층은 승차장, 2층은 출입구로 되여 있는 신둔도예역촌역은 도자기를 연상케 하는 곡선의 역사로 지어졌다,역앞 인도로 직진으로 가다가 경충대로로 합류해서 건널목 건너 오른쪽으로 이천시내 방향으로 간다,이천은 삼국시대부터 이천일대를 차지하려는 경쟁이 심했다, 고구려때는 남천현(南川縣), 568년 신라때 부터는 남..
봉현정 정자 바닥은 앉을 수도 없을만큼 흙 먼지로 뒤덤벅이 되여있어 봉화길 의자에 앉아 잠시 쉬였다가 위쪽 다리건너 맞은편에 있는 공장옆으로 가다가봉현1리 마을화관앞 다리를 건너간다, 다리앞은 이지아트라는 공장이다,이지아트 공장을 지나 직진으로 올라가면큰 육교가 있는데 이 육교는 봉현 육교로3번 국도 성남이천로 위로 지나가는 육교로 아래 도로를 내려다 보면 성남에서 내려오는 상하행선 도로와,이천으로 이어지는 상 하행 정개터널도 보인다, 터널 위 산은 해발 433,4m의 정개산으로 예전 석재 채석장이 있었던 흔적도 보인다, 산 능선 철탑이 보이는 곳 넘어 오른쪽 아래는 동원대학교가 있는 곳이다,봉현육교를 지나 부처재 고개로 올라가는 길에는 미주강화 광주공장이 있다, 미주강화는 모형 돌공장으로 우리가 흔히보..
경기옛길 봉화길 제 4길은 곤지바위길로 곤지암역에서 신둔도예촌역까지 11km의 길로 봉현정과 이천의병전적지 등 2곳에 봉화길 제4길 스템프함도 있다,곤지암역으로 가는 교통편은 서울을 기준으로 했을때 8호선 신사역에서 판교역으로 가서 수도권 전철 경강선으로 환승후 6번째 역이다, 수도권전철 경강선은 판교에서 여주까지 12개역이 있다,곤지암역이다, 작지만 깨끗힌 대합실이 산듯해 보인다,봉화길 제3길이 경기광주역에서 이곳 곤지암역까지 1번출구까지 왔으니 곤지암역에서는 2번출구로 나간다, 2번출구는 1번출구 맞은편 반대 방향으로 곤지암읍사무소로 가는 출구다,2번출구 나가니 집한채 없는 허허벌판이다, 출구 오른쪽 역사 뒤로 가면, 역사와 도로가 만나는 곳 모서리에 봉화길 제 4길 곤지바위길 안내판이 있다,봉화길 ..
병자호란 당시 남한산성이 청군에 포위되어 위급할때 경상좌도 병마절도사 허완(許浣)이 일만여 군사를 이끌고 북상하다 국수봉 아랫마을 쌍령리에서 청군과 맛서 용전분투 하였으나 중과 부족으로 많은 군사가 전사 하였으며경상우도 병마절도사 민영,과 병마절도사 이의배, 안동영장 신세향, 등 여러 장수도 전사했고 경상관찰사 沈演(심연)은 패퇴하여 땅을치고 통곡했다는 쌍령리 전적지 역사를 되새기며 국수봉 정상에서 광주도평초등학교 방향으로 하산 한다,도평초등학교는 국수봉 정상에서 2,2km 정도다,내려가는 길은 생각보다 가파르지 않고능선길 처름 편안한 길이다,급하게 올라 왔으니내림길도 급할 거라는 생각은 기우였다, 올라올때는 가까운 거리를 올라와 가파랏어나 내려갈때는 조금 먼길이라 가파르지는 않았다,산길이니 갈림길이 있..
봉화길 제3길 너른고을길은 1,000년을 이어온 광주의 세월을 느껴보는 길로 광주는 940년(고려 태조 23)에 廣州라는 지명을 쓰기 시작해 1,000년을 넘게 써온 지명이다, 넓을 광(廣)을 쓸 만큼 드넓은 지역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으며 수원으로 편입된 일부 면과 서울 강남 및 강동구, 남양주 일부, 의왕과 군포, 성남, 하남, 일대가 모두 광주였다이렇듯 넓고 광활한 지역라는 뜻으로 너른고을 이라 했다는 廣州(광주), 봉화길 제3길에 있는 국수봉 정상에서 광주의 드넓음을 느끼고 곤지암천에서 세월속에 간직된 나의 의미를 찾아보기 바란다는 너른고을 길을 걷는날2024년 6월 9일 9호선 신논현역에서 신분당선을 타고 판교역으로 가서 경강선으로 환승해 경기 광주역으로 왔다,광주역앞 광주역로로 왼쪽 경안천 방향..
산성역에서 남한산성 로터리로 가서 "남한산성순환 무료셔틀버스" 출발지인 중앙주차장으로 왔다, 주차장에는 광주 항일운동 기념탑이 있는데, 조선시대 외적의 침략에 맞섯던 남한산성은 지형적 역사를 바탕으로 일제강점기 명성왕후 시해와 단발령이 시행되자 경기지역 의병 2,000여명이 남한산성을 거점으로 항일운동을 펼쳣다,기념탑은 의병장 구연영, 정암 이종훈, 해공 신익희 선생 등 3명의 동상도 함께있다, 구연영 선생은 도척면 궁평리 출신으로 남한산성 연합의 진 중군장으로 일본군과 치열한 전투를 펼치다, 아들 구정서와 함께 순국하셨으며, 정암 이종훈 선생은 곤지암읍 실천면 유사리 출신으로 3,1 만세운동 민족대표 33인 중 최고령자셧으며,해공 신익희 선생은 초월면 서하리 출신으로 임시 정부 외교부차장, 내무부장 등..
돌 탑이 보이는곳 여기가 불당리 고개로 산적의 회심고개라 불리던 곳으로, 두개의 장승이 있다예전에 고개 이름을 산적의 회심고개 라고 했다는데 그 이유는 남한산성 한양삼십리길을 과거보러 이 길을 따라 가던 선비들이 과거에 낙방하여 회심고개에 주저앉아 산적이 되었다네, 산적 붉은 옷 벗어 버리고 툭툭털고 회심고개 뒤로하고 봇짐싸서 고향으로 떠나던 이 고개, 그 마음 돌탑되어 바람소리만 나부 끼네,남한산성에서 5km지점, 불당리 버스정류장은 1,37km 남아았고, 오전리 직거래장터 정류장은 3,69km남았다불당리 땡땡이 이야기도 있다, 불당리 고개에는 한양으로 오가는 사람들을 노리는 도둑이 많았다, 그 중에 과거에 낙방하고 집으로 돌아가지 않는 선비도 있었다, 도둑이 된 선비의 마음을 돌려 세운 것은 불당리에..